- 오전 7시~9시 방문 → 9시 넘어도 상관없음

 - 접수처 → 2~4층 (2층 혼잡)

 - 전날 금식 → 위검사(내시경)이 없을 경우 물 마셔도 됨

 - 위검사 → 내시경, 조영제촬영을 원치 않을 경우 혈액검사로 대체 가능 (접수시 얘기하면 됨)

 - MRI선택검사 → 내년으로 연기 가능

 - 전립선 초음파 검사를 위해서는 방광이 소변으로 차 있어야 함

 - 시력검사표 이용

 

본문에서

<국가-리바어어던들의 충돌>
나는 전쟁이 인간 행동 일반의 밑바탕에 놓인 욕구의 대상들과 동일한 대상들 때문에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클라우제비츠의 정의를 바꾸어 말하자면, 전쟁이란 국가 정치라는 집단 수준에서 폭력적 수단으로 이 대상들을 얻으려는 활동이다.

고금을 통틀어 병사들의 광범한 강간은 군사작전의 불가분한 일부로서 약탈과 짝을 이루었다. 약탈할 전망과 마찬가지로 성적 모험을 경험할 전망은 남자들을 호전적인 작전에 참가하도록 이끈 주된 요인이었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 포로는 귀중한 포상이었으며, 다른 모든 전리품처럼 지도자가 먼저 차지할 권리를 누렸다.
일례로 현대 유럽인들의 Y염색체를 분석한 연구는 그들 중 절반 이상이 기원전 5000년경부터 1500년까지 살았던 몇 안 되는 남자들의 후손임을 드러낸다... 이런 현실은 일리아스 처럼 여성이 전리품이었음을 거의 감추지 않는 원사시대 사회의 영웅담들에 여전히 반영되어 있다... 선사시대 유럽 족장들의 경우처럼 칭기즈 칸의 Y염색체가 어마어마하게 퍼져나간 것은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통치 가문의 수장으로서 그를 계승한 아들들이 모두 경이로운 성적 기회를 누렸기 때문이다.

<전쟁은 감소해왔는가? 그 이유는?>

전쟁이 언제나 손해 보는 게임이었고 사람들이 전쟁으로 이득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달으면서 결국 전쟁을 폐기했다는 견해는 근거가 거의 없는 셈이다. 민중은 언제나 지는 쪽에 있었고 참전을 강요당하기만 했다는 견해도 사실이 아니다. 사실 민중은 정치권력과 전리품을 더 많이 차지할수록 전쟁과 제국주의를 더 열렬히 지지하고 더 악착같이 싸웠다. 역사적으로 민주정과 공화정이 전쟁에서 유달리 강력했던 것은 그것들이 사회적 정치적으로 포용적인 체제였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국가들이 덜 싸우게 되었고, 민주주의 국가들 간 전쟁이 사실상 사라질 정도로 그들의 선호가 바뀌었으며, 국제 무역이 급증하는 한편 보호주의가 감소했던 것일까?
기계 기반 생산의 채책에 힘입어 경제 파이가 꾸준히 커졌다. 부의 양이 근본적으로 한정되었던 전근대에는 부를 어떻게 나누느냐는 것이 관건이었지만, 이제 더이상 그렇지 않았다. 그 결과 부의 획득은, 한 참가자가 손해를 봐야만 다른 참가자가 이익을 얻는 제로섬 게임에서 점차 멀어졌다.
전쟁과 정복의 수익성이 낮아지거나 없어진 것이 아니라, 평화적인 결제 활동은 수익성이 높아지고 부를 얻는 유망한 길이 된 반면 정복은 불확실하고 위험한 활동으로 머무르고 경제성장에 쓰일 자원을 끌어다 쓰는 덜 매력적인 길이 된 것이다. 문제는 정복과 군사 점령의 체제로 수익을 낼 수 있느냐는 것이 아니라, 공개무역을 하는 산업 체제라는 대안으로 수익을 더 많이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열린 경제 상업 체제는 경제적 접근과 이를 제한하는 정치적 국경 및 주권을 분리함으로써 전쟁에 불리하게 작용해왔다. 어떤 영토로부터 이익을 얻기 위해 그 영토를 꼭 정치적으로 소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결론 : 전쟁과 평화의 논리>
대체로 보아 산업-기술 혁명, 그중에서도 이 혁명의 자유주의적 경로에 의해 촉발된 근대화를 겪으면서 전쟁의 빈도는 근본적으로 낮아졌다-세계의 선진 지역들에서는 전쟁이 완전히 사라지기에 이르렀다. 이런 변화가 일어난 이유는 폭력적 선택지에 의존할 경우 인간의 욕구를 충족할 가능성이 경쟁적 협력이라는 평화적 선택지에 의존할 경우보다 훨씬 낮아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회가 풍족하고 충분히 만족할수록, 사람들이 가장 절실한 욕구들을 차고 넘칠 만큼 채울수록, 목숨과 신체 일부를 앗아갈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도록 자극하는 유인이 줄어들었다. 인간의 행동 ‘도구상자’에서 폭력적 선택지는 실용성이 떨어진 반면 평화적 선택지는 갈수록 중시되어왔다.

 

 

 

 

 

 

 

 

 

 

 

 

 

 

 

 

 

 

생판 처음 대면하는 남이 밥을 벌어야 하는 일과 조직의 상급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삶의 내용과 궤적을 고백해야 하는 절차의 수모스러움이 장철민의 표정에 떠올랐다.

그런 질문은 결국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을 것이었고 그 질문에 대한 어떠한 답변도 마침내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의 시선의 어두음은 세상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하면서 살아온 자의 찌르는 듯한 날카로움으로 번득였고, 그 날카로움의 각도는 세상에 의하여 끝없이 훼손당한 자의 주눅들림으로 수그러져 있었다.

살아서 쳇바퀴를 돌리던 다람쥐의 마음의 어두움에 관하여 나는 말할 수도 없었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나는 내가 누구누구의 아버지이며 누군누구의 아버지는 아니라는 이 생물학적 구획에 목이 막혔다.

‘살아갈수록’ 이라든지 ‘뒤섞인다’ 같은 말들은 사실 무책임하고 부정확하다. 모호한 것들과 명석한 것들은 ‘살아갈수록’ 뒤섞이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뒤섞여 있는 것이며, ‘뒤섞이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그것들을 분별해서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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