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판 처음 대면하는 남이 밥을 벌어야 하는 일과 조직의 상급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삶의 내용과 궤적을 고백해야 하는 절차의 수모스러움이 장철민의 표정에 떠올랐다.

그런 질문은 결국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을 것이었고 그 질문에 대한 어떠한 답변도 마침내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의 시선의 어두음은 세상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하면서 살아온 자의 찌르는 듯한 날카로움으로 번득였고, 그 날카로움의 각도는 세상에 의하여 끝없이 훼손당한 자의 주눅들림으로 수그러져 있었다.

살아서 쳇바퀴를 돌리던 다람쥐의 마음의 어두움에 관하여 나는 말할 수도 없었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나는 내가 누구누구의 아버지이며 누군누구의 아버지는 아니라는 이 생물학적 구획에 목이 막혔다.

‘살아갈수록’ 이라든지 ‘뒤섞인다’ 같은 말들은 사실 무책임하고 부정확하다. 모호한 것들과 명석한 것들은 ‘살아갈수록’ 뒤섞이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뒤섞여 있는 것이며, ‘뒤섞이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그것들을 분별해서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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