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



모든요일의여행1




완벽한 여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여행이 완벽해야 한다고 믿는다.

타인의 여행은 늘 완벽해 보이기 때문이다.


온갖 종류의 여행책들은 여행을 예쁘게 포장하여 상품화하기에 바쁘다.

풍부한 먹거리, 빼어난 풍경, 놀거리 즐길거리 모든 것이 좋단다.

전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서.


그러나 우리 모두 이런 경험이 있다.

맛집이라고 갔는데 줄만 길고 왜 맛집인지 아리송했던.

너무 예쁘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생각보다 그저 그래서 멋쩍었던.

그럼에도 우리는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한다.

남들과 다르게 보이면 안되기 때문에.


남자 이름같지만 여자 카피라이터인 김민철님의 <모든 요일의 여행>은 여행의 불편함에 대해서 

스스럼없이 인정하고 그 속에서 가뭄에 콩나듯 얻는 보석같은 행복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이다.

페북, 인스타에 올라오는 세상을 다 가진듯한 과시적인 여행기가 아니라 털털하고 소박한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정된 시간과 예산은 언제나 여행이라는 환상에서 우리를 옥죄고 스트레스를 유발시킨다.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은 설레고 기쁜 표정은 없고 피곤하고 괴로운 얼굴 일색이고

여행지에서나 귀국할 때나 싸우는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런 모습에 대해서는 아무도 SNS에 올리지 않는다.


모든요일의여행2



어느 순간 나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여행은 고통을 수반하고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많이 내려놓고 애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나름 만족도가 크다.


모든요일의여행3



여행일정을 빈틈없이 빡빡하게 짜는 것도, 끼니마다 가야할 맛집을 정해 놓는 것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든 것을 정해 놓는 행위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마음가는 대로 가고, 그냥 눈에 띄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도 모두 여행의 일부이며 그런 나른함 속에서 행복을 찾는 건 모두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행복은 타인이 아니라 내가 결정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느낀다.










모든 요일의 여행
국내도서
저자 : 김민철
출판 : 북라이프 2016.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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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프로젝트1


플로리다프로젝트2


플로리다프로젝트3


플로리다프로젝트4



플로리다프로젝트5


플로리다프로젝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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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 <The Florida Project>


가끔 이런 영화가 있다


딱봐도 저예산에 유명 배우도 없고 언뜻보면 별 내용 없는 영화


흥행을 위해 만들었다기 보다는 그냥 이런 영화 자체를 만들고 싶었던 영화


화려함. 자극적인 요소, 볼거리가 없어도 감독의 인생 철학이 깊게 배어 있으면


그 영화는 이미 걸작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내 뼈를 때리는 것은 시청각적인 자극이 아니라 영혼의 울림이라는 것을


그런 영화에 감정이입을 하는 순간 끝모를 편안함을 느끼며 우리의 의식은 


감독이 운전하는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부(富)는 본질적으로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없다"라는 건 모두가 어렴풋이 


교과서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현실적인 어른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없다


그래도 돈이 있어야 행복하지 않을까... 


내가 지금 불행한 건 남들보다 가난하기 때문이 아닐까...


정답없는 고민을 하면서 그들은 고통을 감수한다


그런 세속적인 문제따위 아이들은 잘 모른다


그저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게 가장 행복하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야 기어코 울음을 터뜨린다


우리가 살면서 애써 부인하려고 했던 사실들을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속에서


다시 마주할 때의 그 불편하고 불안한 감정이 우리를 눈물 짓게 한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멈춰서서 돌아보니 나는 어디에 있고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상실감에 대해


이 영화는 작은 손을 내밀고 있다




감독은 영리하게도 억지 감동을 자아내게 할 시시콜콜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저 무니라는 아이의 일상을 듬성듬성 보여주고 있을 뿐이지만


영리한 어른들은 그 간극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워넣고 가슴을 부여잡는다




무심한 듯 방세를 독촉하는 바비(윌렘 데포)가 아이들을 소아성애자로부터 보호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








머니볼1


머니볼2


머니볼2


머니볼3


머니볼4


머니볼5




머니볼  <Moneyball>


다윗은 정말 골리앗을 이겼던 걸까.



말콤 글래드웰은 자신의 저서 <다윗과 골리앗 David and Goliath> 에서 약자는 생각보다 강하고 약자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의견에 꽤나 회의적이다.



돌팔매질 말고 자본주의는 어떨까.




자본소득이 근로소득보다 항상 우위를 점하는 시대.

투기자본이 전세계 경제를 흔들어 놓는 시대.

우리는 자본이 자본을 낳는 시대에 살고 있다.

노동의 가치는 평가절하되고 있으며 불로소득과 투기행위가 추앙받고 있다.



과연 이 시대에도 소규모 자본을 가진 언더독은 거대 자본가를 넘어설 수 있는가.

지구상 가장 대표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메이저리그라는 상업스포츠에서도?



매년 주축 선수들을 부자 구단에 빼앗기고 한정된 예산으로 새로운 선수를 키워내야만 하는 마이너 클럽.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은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한다. 

피터 브랜드라는 인물을 타구단에서 데려와 자신의 보조로 두고 기존의 스카우팅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탯(출루율)에 주목하고 저평가된 선수들, 이미 타구단에서 관심을 갖지 않는 선수들을 데려온다.


물론, 파격적인 변화는 언제나 격심한 반발을 불러오고, 감독조차도 새로 데려온 선수를 기용하지 않는다. 

연패, 부진의 늪... 단장은 감독에게 자신이 데려온 선수들을 출전시키길 종용하지만 감독입장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주전선수를 다른 팀으로 보내버리고 어쩔 수 없이 단장이 원하는 선수들이 경기에 나선다. 

그 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은 20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는 기적같은 감동이 넘쳐흐르는 실화가 탄생한다.



빌리 빈 단장은 보스턴의 거액 연봉도 거절하고 오클랜드에 남지만 결국 끝내 골리앗을 이기지는 못한다.

부자구단들도 오클랜드의 스카웃방식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다윗의 필살 경쟁우위는 사라지고 돈이 많은 구단들은 계속 성공가도를 달린다.

마치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견했지만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의 장점을 받아들여 역기능을 해소하고 오히려 사회주의가 몰락해 버린 것처럼.


다윗의 성공신화는 완전하지 않았고 골리앗은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




<머니볼>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 3가지


1. 영화 시작부 어두운 텅빈 경기장 스탠드에 브래드 피트가 혼자 앉아 라디오 경기 중계를 켰다 껐다 하는 장면. 그는 자신의 팀 경기를 직접 보는걸 왜 두려워 했을까. 


2. 타구단과 전화트레이드 중 초조함을 못이겨 팝콘을 먹어대는 장면


3. 영화의 엔딩. 딸이 없는 사람도 딸바보가 될 수 밖에 없다.

   You're such a loser 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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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머니2


올더머니3


올더머니4


올더머니5


올더머니6



올 더 머니  <All the money in the world>



리들리 스콧 최신작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논픽션이 원작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스토리가 탄탄하다.


감정적이고 신파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내용이지만 덤덤하게, 느리지만 무게감 있게 이야기를 엮어 낸다.


어쩌면 유괴될 여건에 놓여 있었던 폴 게티, 그리고 유괴범의 요구를 쉽게 들어주지 않으려는 세계 최고의 부자 할아버지, 기이한 운명이었고 또 나름대로의 이유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이 영화의 단연 백미는 폴 게티의 어머니 역, 미셸 윌리엄스의 존재감.


담담한 척 강한 척 하지만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들이 유괴됐는데 눈물도 흘리지 않는군요."


"아들이 유괴됐는데 밥을 하겠다구요?"


어디선가 본 듯한 부조리한 반응이다.


그렇다.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물론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사형 선고를 받은 뫼르소


보통사람들의 상식에 반하는 행동이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그 사람들이 믿는 상식이 정말 옳은 것일까.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라는 장르로 각색된 전형적인 스토리로 전개되는 느낌이지만 전체적인 중량감은 유지한 채 달려간다.


항상 수작 이상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스콧옹.


그의 영화는 언제나 믿고 볼 수 있다.


오래오래 그의 영화를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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